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인천 상륙작전 (문단 편집) === 상륙작전의 결정 ===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은 1950년 6월 29일 한강방어선 시찰에 나섰다. 한강변에서 전선을 확인 후 지상군 투입을 결정한다. >한국군은 보급부대나 체계에 있어 충분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유사시 작전계획도 세워져 있지 않으며 설사 계획이 갖춰져 있더라도 퇴각 중에 발생한 손실로 제대로 실행하지 못할 것이다. >----- >맥아더 원수 전선시찰 보고 전문 中 준비되지 않은 국군만으로는 역부족이라고 판단하고 다음 계획(연합 상륙작전)을 구상한다. 참모장인 알몬드 소장에게 북한군의 병참선 중심부를 타격하기 위한 상륙작전 계획과 상륙지점을 연구를 지시하고 일본에 주둔한 미 제1기병사단에 상륙훈련을 지시했다. 또한, 7월 4일 상륙작전을 위한 공식 회의를 소집했다. 인천을 통해 북한군의 남진을 저지한다는 일명 블루 하츠(Operation Blue Hearts) 작전이었다. 이 작전계획 역시 인천상륙작전으로 7월 22일에 실시하려고 했다. 인천으로 들어와서 교통로의 중심인 서울지역을 장악하면 북한군의 병참선을 끊을 수 있다는 건데, 그때는 북한군의 진격 속도가 너무 빠르고 게다가 상륙전 준비기간이 너무 길기 때문에 블루 하츠 작전은 7월 20일에 공식적으로 폐기된다. 이후 낙동강 방어선을 펼쳤을 때 맥아더 장군은 부산 주변 포위선을 뚫으려 했다. 그러나 당시 병력에 많은 제한이 있던 시기이기 때문에 그에 관한 해법으로 폐기했던 블루하츠 작전(Operation Bluehearts)을 바탕으로 다시금 상륙작전계획을 세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작전명 Operation Chromite로 실행된 인천 상륙작전이다. 맥아더 장군은 6.25 전쟁 당시 UN군 사령관이기도 했지만 그 이전에는 태평양지역 총사령관이자 [[연합군 점령하 일본|일본 점령 연합군사령관]]이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태평양 전쟁]]에서 세계 전사(戰史)상 가장 많은 약 50여 회의 상륙작전을 모두 성공으로 이끈 상륙작전의 귀재이다. 그리고 맥아더가 수행한 상륙작전의 특징이 보통 '아일랜드 호핑' 작전이라고 하는데, 일본군의 요새 하나하나를 격파하는 것이 아니고 후방으로 상륙을 해서 병참선을 끊고 섬에 주둔해 있는 일본군을 고립시켜 격퇴하는 전략이었으므로 맥아더 장군의 산하 육군과 해병대의 경험을 십분 발휘하여, 적 후방으로 상륙작전을 감행해 적을 고립시켜 전황을 일거에 뒤집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는 북한군이 빈약한 육상보급으로 현재의 전선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 보급선을 잘라버리면 침략군 전체의 와해를 예상할 수 있었다. 북한군의 낙동강 전선까지의 육상 보급로인 [[경부선]] 철도와 경부 가도는 필연적으로 서울을 통과했고, 따라서 인천에 상륙해서 서울까지 진격할 경우 이 보급선을 완전히 끊을 수 있었던 것이다. 더불어 일본 점령 사령관으로서 중요한 일 중 하나가 한반도에 진주해 있는 일본군을 몰아내고 무장해제를 시키는 것이었다. 1945년 9월, 미군은 인천으로 상륙하여 일본군을 무장해제했고 그 자료를 사무실에 보관하고 있었다. 이때 대부대를 인천으로 들여보냈던 경험이 이미 있었기에 상륙작전을 실시해야겠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덤으로 산지가 70%인 한반도의 지형은 보급로가 끊어지면 [[전차]] 같은 중장비를 몽땅 버리고 몸만 빠져나오기도 힘들어지므로, 매우 비효율적인 후퇴를 강요할 수 있었다. 고속도로를 따라서 후퇴하면 된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는 터널이 많아진 21세기 현재에나 어느 정도 가능한 이야기며 지금도 터널 몇개를 막으면 답도 없다. 게다가 한국의 고속도로는 산지와 인구밀집 지역을 피하기 위해 고가도로인 곳이 상당히 많다. 이런 가도에 탱크와 장갑차량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면 붕괴 위험도 있을 뿐만 아니라, 적 포병이나 공군의 과녁이 되어버릴 게 뻔했다.[* 이는 의외로 각종 고속도로와 교량, 터널이 기술적으로나 수치적으로나 월등히 정비된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는데 교통 인프라가 구축되어있는건 대한민국 내부 쪽이고 휴전선 부근은 GP로 출입하는 도로 정도만 정비되어있어 사실상 DMZ 자체가 중장비에겐 천연방벽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쪽은 '''산지 + 숲'''이라 '''평야 + 숲'''이 주된 지형이었던 2차대전기 유럽 전선이나 오로지 '''평야''' 뿐이었던 아프리카 전선과는 부대전개 난이도가 차원이 다르다. 연천~철원은 지금도 남북간 기갑부대가 대규모로 통행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목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